 
박순애 교정위원(의정부교도소)
전국 최연소 교정위원으로 6,000시간 정신교육 강의
사회보호법 폐지 위해 안간힘 쏟아~
1982년 가을, 만 19세 나이로 청송교도소 개청 당시부터 수용자와 보호 감호소들에게 정신교육 강의를 한 여자. 27세까지 만 8년간 3,500여 시간을 최고의 인기강사로 20대 젊음을 청송교도소와 보호감호소에서 불태웠던 여자.
전국교도소 최연소 교정위원으로 위촉되어 현재까지 40여년의 세월을 오직 한 길. 수용자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월 24일. 제57회 법의 날을 맞아 교정위원으로 유일하게 국민포장이라는 수훈의 영광을 안았다.(편집자 주)
박순애 위원의 1982년 청송교도소와 보호감호소에서 개청당시부터 1989년 말까지 전국최연소 교정위원으로 재소자 정신교육 강사이다.
그 후 의정부교도소에서 1997년부터 2002년 5년 6여개월 기간 동안 1,800시간을, 영등포교도소(현 서울남부교도소) 1998년부터 2002년 까지 1,000시간을 재소자 정신교육 강의를 했다. 지금 그는 의정부 교도소에서만 교정. 교화 봉사활동을 23년째 하고 있다. 생수, 영치금, 도서등도 남다르게 지원하면서 교정행정 발전에 크게 기여해오고 있다.
박순애 위원은 나이 19세에 시작한 청송교도소와 보호감호소. 의정부 교도소에서의 눈물과 헌신적인 봉사활동이 어느새 40여년의 세월이다.
강산이 몇 번이 변해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박순애 위원의 마음이다.
40년간 꾸준하게 교정. 교화활동. 수용자 대상으로 6,000 시간 이상 정신교육에 온 힘을 쏟아온 박순애 교정위원을 직접 만나보았다.
- 수상소감이 궁금하다.
= “저는 이 길을 달려오면서 단 한 번도 상 받을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박순애 위원의 목 메인 소감이다. 그는 수용자들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인생에서 수용자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 인생도 없을 거라면서
“버려진 인생이었던 자신의 삶과 처음 만나는 수용자들의 삶의 뿌리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슬픈 지나온 삶을 고백하는 등 진솔한 강의로 강의실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하루에도 수용자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받았다.
- 박순애 위원이 수용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 것은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시멘트 바닥처럼 굳어진 재소자들의 마음에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마치 버려진 운명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자신이 붙잡고 있는 희망을 재소자들을 향해 전하고자 안간 힘을 쏟았던 그 눈물겨운 열정이다.
또 하나는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앞장선 것이다.
국보위에서 위헌 시비가 있는 보호감호처분을 제정하여 무조건 7년. 내지 10년씩 보호감호를 적용하여 청송 제1.2 보호감호소에 수용된 인원만 4천여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보호감호를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용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마치면 다시 보호감호소로 옮겨져 감호를 받는 제도가 위법이라는 것이다.
박순애 위원은 사회보호법 자체가 불법적으로 제정되어 무조건 장기간 가두어 두는 것에만 치중된 악법인 사회보호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르짖었다.
그는 당시 조선일보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사회보호법 폐지 운동에 앞장서 강력히 촉구했다.
보호감호자들의 인권을 위해 자신의 20대를 눈물겨운 몸부림으로 항거했다. 감호자들의 인생의 젊음과 인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절망만 안고 살아가는 수 천명의 보호감호자들의 희망을 위해 앞장 서왔다.
박순애 위원은 2001년 ‘찔레꽃 그 여자' '라는 자서전에 청송보호감호소의 실상을 책으로 출간하여 당시 많은 방송에서 집중보도 되었고 베스트셀러로 수십만 부가 팔렸다.
2002년도에는 청송교도소 보호감호소의 실상을 낱낱이 공개한 ‘푸른솔 붉은집’ 실화장편소설을 출간해 지금 국가도서관에 역사적 기록물로 보관되어 있다.
사진(위); 박순애 교정위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국민포장을 수상하고 있다.
사진(아래); 박순애 위원이 1983년 청송교도소에서 강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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